"미국 원어민이 매일 쓰는 표현", "꼭 알아야 할 관용 표현" 처럼 타이틀이 붙여진 영어 학습서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오늘의 영어 표현" 과 같이 원어민이 쓰는 관용 표현을 게시한 글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이들을 모두 익혀야 할까요, 아니면 익히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이번 포스트에서 효과적인 영어학습을 위해 고려할 부분 중 하나인 "관용 표현 vs 일반 표현"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 포스트를 통해 여러분이 지금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투자 대비 더 효과적인 학습을 할 수 있을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 관용표현(Idiom)은 무엇인가?
관용표현(Idiom : 이디엄)은 속한 단어들의 원래 의미와 다른 의미, 확장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관용표현"이라는 용어는 생소할 수 있지만 한국어를 하는 우리도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것이 관용표현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관용 표현이라는 말과 함께 종종 들을 수 있는 용어는 "슬랭(slang)" 입니다. 슬랭은 "속어", "비속어" 을 의미하는데 공적인 자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관용 표현이든 슬랭이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됩니다.
그럼 "말을 배우는 아이들은 관용어나 슬랭을 언제쯤 배우게 될까요?"
* 모국어 습득시 관용어, 슬랭을 접하게 되는 시기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은 배움을 위한 배움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그렇다 보니 자기 중심적 표현을 하게 됩니다.
"출출한 것 같은데 간단히 요기를 때울 것이 없을까?"
아이들은 이런 표현을 알지도 못하고 써야 할 필요도 못 느낍니다.
'출출하다', '요기를 때우다'라는 표현을 모르는 성인이 있을까요? 평상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어도 그 의미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표현을 언제, 어디서 배웠을까요? 중3 때? 고1 때? 아님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과 뛰어 놀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의 99%는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어린 아이들은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표현은 최소한 초등학생 정도 되어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주변에서 듣더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흘려버리게 되죠.
그렇게 보면 관용 표현을 접하고 익히기 시작하는 시점은 자신의 욕구와 의견, 생각과 관련된 일상 표현을 어느 정도 잘 하면서부터입니다.
일상에서 꼭 필요한 기본 표현들을 잘 사용할 즈음 "출출하다", "허기지다" 등의 표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는 것이죠.
* 관용 표현과 슬랭을 사용하는 이유
관용 표현과 슬랭이 없으면 대화를 못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일상 대화는 관용 표현이나 슬랭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관용 표현이나 슬랭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는 "재미 추구"일 것입니다.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짜릿한 재미 대신 영어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재미를 향한 욕구는 항상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 욕구는 사용하는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배고파, 밥 줘, 밥 먹어", "배고파, 밥 줘, 밥 먹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까요?
일상에서 반복해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가능하다면 그것에 재미 요소를 붙이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능인 것입니다.
"엄마, 나 너무 배고파, 뱃가죽이 들러 붙겠어~"
* 영어 학습자에게 관용 표현과 슬랭
이제 대략 영어 학습자에게 관용 표현이나 슬랭이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지 감이 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8년 동안 영어 학습을 해 오며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만났으니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죠. 그들 중에는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있었고, 왕초보도 있었고, 영문학과 학생도 있었고, 학교 영어 선생님도 있었고, 전문직 종사자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보진 못했네요. 세 딸이 있고, 40이 훌쩍 넘어 조금 심각하게(!) 영어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 말이죠. (^^)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관용 표현이나 슬랭을 상황 적절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학습자들 중에서는 상급 단계로 분류할 수 있는 유학생(해외 체류 4~5년 이상)들도 관용 표현이나 슬랭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 많다 해도 수 천명이고 그 중 일부만 유학생이었으니 모든 유학생을 포함시키기에는 분명 무리수가 있을 것입니다.)
유학을 다녀온 상급 단계 학습자들이 한국 학습자들과 다른 점은 관용 표현이나 슬랭의 사용 보다는 (차이는 물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순발력과 문장 구성력을 가졌다는 것과, 발음이 대다수 원어민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 그리고 일상 대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개별 단어, 동사구)들을 많이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유학생들처럼 1만 시간 이상 영어 학습(영어공부 + 노출)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국내에서의 영어학습인데, 관용 표현이나 슬랭에 시간을 쏟는 것은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기 전에 재미를 먼저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필요한 것이죠.
그럼에도, 꼭 "원어민이 매일 사용한다는 표현" 을 익히고 싶어서, 열심히 익혔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익힌 관용 표현이 나오지 않는 이유
영어 학습자(특히 한국어가 모국어인)가 영어로 말한다는 것은 다양한 프로세스가 동시 다발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떠올려야 할 것이고, 그것에 맞는 영어 문장 구조를 떠올려야 할 것이고, 단어나 표현을 떠올려야 할 것이고, 그것들을 소리로 내야 합니다.
보통, 기초 단계에서는 한 문장을 다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곤 하는데, 점점 단계가 올라가면서 전체 문장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기초 단계 때보다 말하는 속도는 전체적으로 빨라졌지만, 여전히 머리속은 정신 없이 바쁘게 됩니다.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랴, 문장 구조 생각하랴, 단어 생각하랴, 이해할 수준으로 발음에 신경 쓰랴 . . .
한 마디로 정신 없죠.
이렇게 바쁨(Busyness / Haste)이 익혔던 관용 표현이나 슬랭을 사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의사 전달을 위해 이것 저것 생각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언어 사용시의 "재미"를 선택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 관용 표현 익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효과적인 영어 학습을 위해서는 관용 표현을 익히지 말아야 할 것처럼 들리네요?
잘 보셨습니다!!!
"익히지 마세요~!"
라고 간단하게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그리 간단하진 않습니다.
미드나 영화도 보고 싶고, 원어민 친구를 사귀고 싶기도 하고 , , ,
미드나 영화 속의 연예인들이, 그리고 원어민들이 관용 표현을 흔히 사용하기에 그것을 놓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저의 경우를 봐도,
수 년을 만난 원어민 등산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는 제가 원어민이 아닌 것을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속도로 하곤 합니다. 관용 표현, 슬랭, 욕설 등은 야외로 나가서 접하게 되는 일상인 것이죠.
저도 관용 표현을 아예 무시해야 할까요?
또, 인기 있는 외국의 영어 강사들은 유투브 영상을 통해 맛깔 난 표현을 알려 줍니다.
그런 언어 학습의 재미를 뒤로 하고, 지루한 문법 책이나 평이한 영어 문장만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 방향을 좀 잡아 보겠습니다.
* 학습 단계별 관용 표현 학습과 그 방법
우선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현재 영어를 접하고 사용하는 환경, 그리고 앞으로 접하게 될 환경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과 한국에서 1년에 3~4 번 영어로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사람과는 학습양과 방법이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류 1. 기초 단계 학습자
잠시 동안 덮어 두세요. 관용 표현 외에 해야 할 것이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기초 표현을 익히고, 문장 구조를 익히고, 문법을 익혀 쉬운 표현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있습니다. 왼쪽의 관용 표현 대신 익혀야 하는 것은 오른쪽의 평이한 표현 방식입니다.
- 기가 막히다 -> (부정적)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긍정적) 굉장하다, 훌륭하다 . .
- 황당하다 -> 이해가 안 된다. 할 말이 없다. . .
- 한턱 쏠게 -> 내가 살게, 내가 술 살게
- 식은죽 먹기야 -> 쉬워
- 불 난데 부채질 하는구나. ->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네.
분류 2. 중급 단계 학습자
하루 학습량이 2시간 이상이라고 가정할 때, 5~10%를 할애해 관용 표현에 투자하면 어떨까요?
사실 5~10% 라는 것은 애매모한 수치입니다. 칼같이 학습 시간을 체크하는 학습자는 흔치 않으니까요.
결국, 가끔씩 인터넷에서 접하거나, 유투브 영상으로 접하거나, 원어민 강사로부터 몇 개 정도 배우는 것이면 됩니다.
이 단계에서 이렇게 배우는 관용 표현은 사용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런 관용 표현에 노출되고 리스닝시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익힌 표현을 잊었다고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으며 부담 없이 경험하는 정도로 학습하면 됩니다.
표현들 중에는 마음에 들어 외우고 싶은 표현도 있을 수 있는데요, 그런 표현들을 간과할 필요는 없겠죠?
사용 목적으로 마음에 드는 표현을 외울 때는, 자신이 발음 했을 때 1~2초 내에 나올 수 있는 것들로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 No sweat !
(땀 없어? => 상대방이 자신이 받은 호의에 대해 부담스러워할 때,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큰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말라는 의미. 가능한 한글 해석 : 문제없어~, 별거 아니야~, 그쯤이야~)
간단히 1~2초 만에 발음할 수 있죠?
이 표현은 어떨까요?
- Hit the nail on the head.
(못의 머리를 때리다? => 정곡을 찌르다)
분류 3. 상급 단계 학습자
기본 학습 방향은 중급 단계에서의 방향과 비슷합니다.
접할 기회가 된다면 부담 없이 경험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는 리스닝도 적정 수준 이상으로 되기 때문에 자신이 이전에 익혔거나 경험했던 표현을 다른 곳에서 다시 듣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기가 오면 그 땐 사용할 정도로 깊이 익히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빠른 시간 내에 발음할 수 있는 수준의 표현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재미" 와 언어 사용의 "즐거움"을 더하는 것이 관용 표현인데, 그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수 초가 걸린다면 상대방은 기다림에 지루해 할 것입니다.
이해하는 관용 표현을 조금씩 늘려감과 동시에, 사용하고 싶은 표현은 짧은 표현 위주로 명확히 익혀 놓는 것이 좋습니다.
아울러, 꾸준한 리스닝을 통해 원어민들의 관용 표현 사용을 현장감 있게 접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관용 표현을 익혀서 사용하는 것도 쉽진 않지만, 리스닝으로 들어 보지 못한(뉘앙스를 잘 모르는) 관용 표현을 눈으로 보고 익혔을 때는 그 사용 가능성이 더 희박하게 됩니다.
관용 표현은 언어의 성숙된 단계이기에 분위기나 뉘앙스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익히는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죠.
* 맺음말
"원어민이 매일 쓰는 50개 관용표현!" 이라는 포스트를 올려야 인기가 있을 텐데 말이죠.
영어 학습에서 불필요한 학습이 존재하진 않습니다.
다만, 대부분 학습자들의 학습 여건을 고려할 때 적정 시점에서는 효과를 봐야 지속할 힘을 얻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실력 향상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학습 방법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관용 표현이나 슬랭이 그들 중 하나입니다.
"관용 표현"에게는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초급 단계라면, 당분간은 그(그녀)를 자주 만나진 마세요.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여러분의 영어가 성숙해지면 만나도 늦지 않습니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는 어린 딸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Effort First, Then Meth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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