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가 말하기를, 성공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안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영어학습에도 적용될까요? 이번 포스트에서 학습자들이 사용 못할 표현에 왜 시간을 투자하는지, 그런 과정을 어떻게 더 나은 학습으로 이끌 수 있을지 이야기합니다.
* 언어학습의 레벨
아기가 시도하는 첫 한 마디는 '엄마'와 비슷한 '음마'일 것입니다. '엄마'를 시작으로 주변 상황과 관련된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본능적 욕구와 관련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인간이 배우는 핵심 단어 중 하나는 '원하다(want)'일 것입니다. 아기가 언어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은 본능에 충실한 기본 행동인 것이죠.
이렇게 자신의 본능과 요구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 한 발 더 나아가 주변 상황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초등학교 전 아이들이 이런 단계에 있게 되며 이들은 기본 문장 형태를 통해 다양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후 학교를 다니면서 언어 구사 능력이 한층 발전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표현들을 배우고 옳고 그름의 인간사를 표현하도록 배웁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상황속에서 좋은 감정들과 나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국어는 두뇌의 지적 능력 향상과 주변을 통한 경험 속에 점점 더 발전하게 됩니다.
* 모국어가 아닌 영어 학습
성인 학습자들은 지적 능력이 어느 정도 성숙해진 후 실용 영어를 배우게 됩니다. 지적 능력이 성숙하다는 것은 두뇌에 모국어가 이미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지적 능력이 성숙하고 여러 단계의 모국어 표현에 익숙하기에 '한국어로 배우는 영어'에 있어서는 그 레벨이 크게 상관이 없는 편입니다.
단어 philosophical (철학의, 철학적인)을 본 영어 원어민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입니다. '철학'의 의미가 명확히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 성인 학습자들은 '철학'의 의미를 알기에 원어민에게도 어려운 이 단어를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단어 뿐만이 아닙니다. 말을 배우는 원어민 아이들은 흔히 사용하지 않는데 외국어로 배우는 학습자들이 익히는 관용 표현들도 꽤 많습니다. 그 한국어 해석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익혔지만 잠자는 표현
Beat around the bush (핵심을 피해 돌려 말하다)와 같은 표현은 온라인이나 "원어민 관용표현" 학습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익히도록 추천되는 표현을 여러분은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나요?
저는 지난 학습 과정 동안 원어민 리스닝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학습자들이(만났던 여러 명의 미국 유학생 포함)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영어 대화 중 이 표현을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요.
그것은 이 표현을 사용하기에 적절한 상황이 한번도 없어서였을까요? 아님 이 표현을 더 확실히 익히지 못해서였을까요?
그것은 엄밀히 말해 beat around the bush 라는 표현을 대화에서 편하게 사용할 만큼 단계가 안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습 시간으로는 어림잡아 1만 시간을 넘겼음에도 아직 그런 레벨이 안 된다면 1,000시간, 500시간(1시간씩 1.5년)을 공부한 학습자에게 이 표현은 유용한 것일까요? 아님 과한 것일까요?
*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어떤 표현을 먼저 가르쳐 주는 것이 좋을까요?
1) 정처 없이 헤매지 마. 네가 그렇게 해도 너에게 떨어지는 건 하나도 없어.
2)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매지 마. 네가 그렇게 해도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어.
두 문장 의미는 거의 같은데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1) 문장에서 '정처' 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이것은 외국인이 설사 이해하더라도 실제 대화에서 사용하기 힘든 단어입니다. '너에게 떨어지는 게 없다' 라는 다음 문장 역시 우리에겐 쉬운 표현이지만 외국인에겐 이해와 사용이 쉽지 않은 표현이 됩니다.
1) 문장이 우리에게 더 흥미롭게 들리는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어떤 형태를 가르치는 것이 좋을까요?
* 하다 보면 언젠가 도움되지 않을까?
"영어는 평생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영어 관련 직업도 아니고 업무에서 영어 쓸 일이 없는데 영어를 평생 공부한다면 어떨까요?
학습자에게 따라 다르지만 부수적으로 얻는 것 없이 영어를 평생 공부하는 것은 그리 훌륭한 시간투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이죠.
영어는 하다 보면 모두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지속적으로 접하지 않으면 얻는 것 이상으로 잊혀지게 됩니다.
이것은 모국어인 한국어가 영어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어 공부를 한 동안 하고 안 하면 그 동안 익힌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학습하는 것이 투자대비 효과를 더 올릴 수 있을까요?
* 학습 효과를 올리는 방법 : 노출학습 + 암기학습의 조율
만약 여러분이 beat around the bush 라는 표현을 온라인이나 학습서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돌려 말하다'의 한국어 의미는 알지만 도대체 beat around the bush 가 어떻게 '돌려 말하다'가 된 것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럴 땐 과감히 접해 보는(경험)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접하는 정도라고 보자마자 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 세번 소리내 읽으며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접해 본 후 원어민과 대화하거나 리스닝시 이 표현을 다시 들었는데 생각나지 않으면 그때 다시 의미를 찾아봅니다.
이런 학습 과정은 다각도 노출 학습입니다. 이 표현이 얼마나 내가 접할지 모를 때 다양한 노출을 통해 점진적으로 학습하는 것이죠.
I wanted to be able to understand it, but I couldn't.
반면, 으; 문장은 구조적으로 눈에 잘 들어올 것입니다. 이런 문장/표현은 암기학습, 심화학습을 통해 사용할 정도로 익히는 것입니다. 단순히 노출 학습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요.
* 맺음말
넓게 보면 불필요한 표현, 불필요한 문법, 불필요한 문장 구조는 없습니다. 원어민 중 누군가는 그런 것들을 실제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학습자가 흔히 사용하지 않을 표현을 계속 익히면 실력 향상이 늦는다고 느껴져 결국 학습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미드에 나온 표현 중 원어민이 아예 안 쓰는 표현이 있을까요? 원어민이 쓰기에 미드에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습 시간이 많지 않은) 학습자가 익힌다 해도 실제 상황에서 쓰지 못할 표현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런 표현에 시간을 많이 쏟는 것은 상급 단계에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관용 표현, 슬랭, 구조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표현들은 경험삼아 접하는 "노출학습"을 하고, 흔히 사용되는 표현, 패턴, 단어는 명확히 익히는 것이 투자 대비 더 나은 학습이 됩니다.
대부분 한국 학습자에게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원어민들이 사용하는 관용표현, 슬랭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사용되는 표현과 패턴을 시간 지체 없이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제한된 학습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Comments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영단어도 많이 외워야하나요? 외워야 한다면 단어책 추천 좀 해주시면안될까요?
영어를 배우며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들이 여럿 있죠. 단어를 익히는 것도 그 중 하나고요. 5년이든, 10년이든 영어를 배우고 있다면 단어는 계속 익혀가게 됩니다. 끝이 없죠.
그 중요성은 단어를 단어책으로만 익히게끔 부축이기도 하는데요, 영어 단어는 다른 분야 학습(리딩, 말하기, 리스닝 등)을 하면서 함께 병행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단어 공부만을 위한 팁을 드린다면, 갖고 있는 (아님 별도로 구매해서) 영어회화 서적에 나오는 모든 단어를 먼저 익히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것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